<제3주제>보도와 명예훼손, 대안적 검토
-한·미간 비교를 중심으로-
배 금 자
변호사

I. 서 론

명예훼손소송은 개인의 인격권과 언론 자유의 충돌이기도 하고, 피해자 개인의 인격권과 일반인들의 알 권리의 충돌이기도 하다. 이들 권리보호가 모두 헌법상 보장하는 중요 이념들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명예훼손소송에 대하여 언론은 언론자유를 위해 면책범위를 넓히려 하고, 개인은 인격권 보호를 위해 언론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미국은 1964년 뉴욕타임즈 판결을 계기로 인격권 보호보다도 언론 자유를 우위에 올려놓았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언론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명예훼손 소송에서 많은 배상액 때문에 언론사들은 이에 불만이 많고 개혁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편, 우리 나라는 사전구제나 정정보도청구 등 다양한 구제방법이 있고, 판례의 태도가 인격권을 언론 자유보다 더 보호하기 때문에 미국보다 피해자에게 유리하나, 배상액이 너무 적어 실효가 낮다.


II. 미국의 명예훼손소송의 특징과 법적 쟁점


1. 개 요


미국 명예훼손소송에서는 첫째, 피해자의 신분이 공직자, 공인, 사인인가에 따라 책임요건을 달리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분 구분이 큰 쟁점이 되었고, 둘째 의견과 사실을 어떻게 달리 취급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어왔다. 셋째, 사전금지나 정정보도가 거의 인정되지 않고 명예훼손은 주로 금전배상으로 해결하고, 명예훼손 소송은 민사소송이 주를 이루며, 징벌적 배상을 인정하는 경우 그 액수가 엄청난 것이 큰 특징이다.


2. 공직자, 공인, 사인의 구분과 쟁점


가. 공직자, 공인, 사인의 구분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New York Times v. Sullivan 사건에서 "공직자들의 공적행동"에 대한 토론에 대하여 Common Law 원칙에 의하지 않고, 헌법상 언론 자유의 보호대상으로 하여, 공직자인 원고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지 못하면 언론은 명예훼손의 민사 책임을 지지 않게 했다.

'현실적 악의' 요건의 입증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요건과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부과한 것은 언론측에서는 헌법적 특권을 보장받은 것과 같았다. 이로써 공직자의 공적행동 보도에 대해서는 인격권보다도 언론 자유가 더 보호되게 되었다. 연방대법원은 Garrison v. Louisiana 사건에서 공직자의 공직 적합성을 판단하는 토론과 형사적 명예훼손에까지 이런 헌법적 특권을 확장하였다.

연방대법원은 그후 Curtis Publishing Co. v. Butts 사건 과 Associated Press v. Walker 사건에서, 뉴욕타임즈의 '현실적 악의'기준을 공적 인물의 경우에도 확장하였다. 연방대법원은 Gertz v. Robert Welch, Inc. 사건에서 공인을 일반적 공인과 제한적 공인으로 나누어 달리 취급했다. 일반적 공인은 공인과 관련된 '모든 사항'의 보도에 관해 '현실적 악의'를, 제한적 공인은 그가 관여한 '특정 문제'에 관한 보도에만 '현실적 악의' 요건을 필요로 한다.

연방대법원은 Resenbloom v. Metromedia, Inc. 사건에서 '현실적 악의'의 이론을 사인 중 공적 이해관계에 관여된 사람에게까지 적용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후에 Gertz사건에서 이런 기준을 폐지하고, 뉴욕타임즈 사건과 같이 원고의 신분에 따른 구분방식으로 회귀하여, 사인에 대하여는 일반 과실책임 원칙에 따라 명예훼손을 판단하도록 했다.

연방대법원이 공직자, 공인에 관해 명예훼손 요건을 어렵게 한 것은 공적 이슈에 관해 공적 토론을 활발히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Gertz사건에서 그 공직자 등과 사인을 구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무원 신분을 추구한 사람들은 공공의 밀접한 감시의 대상이 되는 위험을 처음부터 감수했기 때문에 공적 업무에 관련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다. 일반인들은 공직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도 맡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명예를 포기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허위보도로 인해 손상당한 명예훼손의 피해 보호를 법원에 요청할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일반인은 공무원과 공인보다도 훨씬 피해에 취약한 입장에 있으므로 누구보다도 피해 회복의 자격이 있다."


나. '현실적 악의'의 의미


'현실적 악의'는 문제된 표현이 거짓임을 알거나 거짓인지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한 것을 말한다. 허위임을 안 경우는 판단이 쉬우나 실제 많지 않고, '현실적 악의'의 판단은 대부분 후자의 유형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다. '무모하게 무시한' 의미는 "아마 허위일 것이라고 고도로 인식한 경우"로, 주로 표현당시 가졌던 피고의 심리상태에 초점을 두고 주관적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무모하게 무시한 것'의 판단은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추론한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본 요소는 제보자의 신빙성, 명예훼손내용의 신빙성, 진실 확인 노력 여부, 보도관행 준수여부, 기사내용의 긴급성, 표현 동기, 언론사의 경향 등이다.

'현실적 악의' 요건을 원고가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인의 경우 '과실'만 입증하면 되는 반면, 공직자나 공인은 ''현실적 악의''를 입증하도록 되어 있는 미국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직자와 공인의 소송이 어렵다는 것은 LDRC의 1999년 보고서가 보여준다. 1998년 개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언론승소율이 44.4%인 반면, 공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언론승소율은 75%에 달한다.

다. 공직자, 공인이 제기한 소송에서의 쟁점

따라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는 '현실적 악의'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이 공직자 또는 공인으로 인정받지 않으려고, 피고는 원고를 공직자 또는 공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인에 대한 이러한 불리한 취급이 유명인에 대한 기사로 돈을 버는 'celebrity journalism'을 부추기고, 언론은 유명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즉 "명예훼손할 특권"을 언론에 주었다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많다.

Gertz 판결에서 공인들을 두 종류로 구분하였지만, 구체적으로 그들의 어떤 행동이나 사항이 '현실적 악의' 판단을 받는지 분명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공적 인물이라고 해도 그 삶의 어떤 면은 완전히 헌법적 특권 밖에 있는 것이 있다"고 한 것이나, The Restatement of Torts는 "어떤 명예훼손적 표현은 공직자나 공인에게도 단지 순수하게 사적 영역이 있다"고 하여, 공직자나 공인의 '어떤 부분'은 '현실적 악의'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영역을 인정한다. 이것이 공인들에 관한 명예훼손에서 쟁점이다.

연방대법원은 공직자도 ① 비교적 고위 공직자나 공직후보자인가 ② 낮은 계급에 있는가를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는 좀처럼 '현실적 악의'의 입증책임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후자는 완화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나 공직 후보자에 대해서는 과거 전력이나 전과, 비행, 인격 등 사적 생활은 바로 '공직 적합성'에 연결되는 것으로 판단하여 순수한 사적 영역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반면, 직무수행에 있어 권한, 재량이 거의 없는 낮은 계급의 원고들은 직무수행에 밀접히 연결된 부분만 '현실적 악의'요건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명예훼손소송에서 일반적 공인도 고위공직자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다. 연방대법원은 Gertz 사건에서 "원고가 공동체에서 일반적인 명성 혹은 악명을 가지거나 사회의 일에 널리 관여할 때 그의 인생의 모든 면에서 공직자로 된다"고 했다. 랠프 네이더, 죠니카슨 등이 일반적 공인으로 인정되었는데, 실제 케이스에서 이러한 유명인들 관련 보도가 '현실적 악의'의 적용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일반적 공인은 국가적으로 유명할 필요는 없고, 지역사회에서 유명한 것도 포함한다. 공인에 대한 소송에서 '현실적 악의'를 피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 공인의 경우에나 가능하다. 그들은 참가한 토론에 관련된 것에 대해서만 '현실적 악의'가 적용되므로,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이를 벗어날 여지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3. 사실과 의견의 구분

Common Law상 공평한 논평의 면책 특권에 의해 의견은 사실보다 강한 보호를 받았지만, 연방대법원이 Gertz사건에서 의견에 대해 거의 절대적 보호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 이후, 하급심에서 오랫동안 의견에 대해 절대적 면책을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1990년 연방대법원은 Milkovich v. Lorain Journal Co. 사건에서 "Gertz에서의 판단은 의견이라는 표제가 붙은 것을 일괄 면책하려 한 것은 아닌데 하급심이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하면서,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분명히 하였다. "어떤 표현이 사실인가, 의견인가 하는 것보다 객관적 증거의 기초위에서 허위 또는 진실로 증명될 수 있는 가라는 구분이 보다 적절하며, 공적 관심사에 관한 증명될 수 있는 허위 사실을 암시하지 않은 의견은 완전한 보호를 받는다."

이로써 의견에 대한 면책 범위가 훨씬 좁게 되었고, 종래 Common Law의 원칙에서처럼 공평한 면책 특권이 다시 중요한 방어수단이 되었다. "나의 의견으로는" 이라든가 "나는…라고 생각한다"는 문구가 있다 해도 이것만으로 면책할 수 없고 실질적 판단을 거친 다음에 사실이 허위임이 판명되면 명예훼손의 성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4. 구제수단(사전금지, 반론권 불허용, 금전배상 원칙)

미국은 명예훼손에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사전금지나 반론권은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많은 주는 명예훼손에 사용된 것과 동일 시간대 또는 동일 지면에 피해자의 반론을 표시할 수 있는 반론권을 규정한 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74년 Miami Herald Publishing Co. v. Tornillo 사건에서, 정치적 후보를 공격한 기사에 대한 반론권을 신문사에 명한 플로리다주법은 '신문의 언론 자유를 침해한 것' 이며 '신문의 편집권에 대한 침해'라고 판단하였다.

이후 미국은 반론권이 허용되지 않고, 명예훼손적 기사를 언론사 스스로 취소해 주도록 피해자가 요청하는 취소권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참고로 방송에서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반론권이 인정되는데 이는 출판언론에 비해 방송언론을 엄격히 규제하는 미국법원의 태도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취소권도 법원에 의한 강제실현을 허용하지 않고, 다만 취소가 있을 경우 징벌적 배상 배제나 배상액 감경 사유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Common Law에서는 명예훼손에 대하여 전통적으로 금지처분도 허용치 않았다. 대법원이 1930년, Near v. Minnesota 사건에서, 신문에 대한 사전금지명령을 허용한 주법은 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 허용이므로 위헌이라고 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떤 사전제한도 무효로 강하게 추정하게 되었다.

예외적으로 군사기밀에 대한 위협적 표현, 음란표현, 폭력과 정부 전복을 선동하는 표현 등을 사전제한이 허용되는 경우로 인정하고 있으나, 그 범위는 아주 좁고 법원이 실제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금지명령을 내린 경우가 거의 없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이미 법원에 의하여 그 내용이 허위로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굳이 유포하려는 경우에만 예외로 허용될 것이라 한다. 1971년 Pentagon Paper 사건도 연방대법원이 언론의 사전제한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5. 배상액

미국 손해배상의 종류는 추정적 손해배상(presumed damages), 보상적 손해배상(compensatory damages),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보상적 손해배상만 있다.

Common Law에서 실질적 손해에 대한 증명이 없이도 손해를 입은 것을 추정하여 추정적 손해배상을 쉽게 인정했으나, 연방대법원은 Gertz에서 '현실적 악의'가 입증되지 아니하는 한 추정적 손해배상이 금지된다고 제한했다. 그런데 Dun& Bradstreet 사건에서, 사인에 관한 표현내용이 공적 관심사가 아닌 경우에는 '현실적 악의'의 입증이 없어도 추정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제한을 다시 완화했다.

보상적 손해배상은 구체적 손해(special damages)실질적 손해(actual damages)를 포함한다. 구체적 손해는 수입 감소, 의료비 등 재산상 손해를, 실질적 손해는 명예손상 등 정신적 손해를 말한다. 후자가 명예훼손의 핵심이다. 연방대법원은 Gretz에서, 실질적 손해는 금액으로 환산될 필요는 없으나 실질적으로 감정적, 육체적 고통을 입었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 나라는 정신적 고통은 증명을 요하지 않고 추정해서 인정해준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손해 보상보다 가해자 응징과 유사 해악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통상 보상적 손해배상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부과된다. Common Law상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되어 왔고, 뉴욕타임즈 판결 이래로 공무원 등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헌법상 '현실적 악의'와 Common Law상 악의 요건을 모두 입증한 경우에 징벌적 배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Gertz사건에서 최소한 '현실적 악의'의 입증이 없는 경우 징벌적 배상이 금지됨을 선언하였다가, Dun & Bradstreet사건에서, 사인의 공적 관심사가 아닌 명예훼손소송에 있어서는 '현실적 악의'의 입증이 없어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허용되는 것으로 입장을 완화하였다.

90년대 들어와서 징벌적 배상은 전체 배상액의 4분의 3이상을 점하고 금액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 명예훼손법의 개혁론에서 중심과제로 되어 있다.

6. 명예훼손의 개혁론과 언론사의 대응

가. 개혁론의 배경

미국의 명예훼손소송은 언론사와 피해자 양측에서 모두 불만을 갖게 되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잦은 명예훼손 소송으로 인해 시달리는 것 자체가 언론에 대한 위축효과가 있고, 소송에서 징벌적 배상이 선고되었을 때는 그 금액이 엄청나서 소규모 언론사는 파산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한편 피해자 입장에서는 특히 공직자 등의 경우 그들에게 적용된 '현실적 악의'이론은 너무 가혹하며, 그들은 돈보다는 허위사실을 바로잡는 것 자체로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데도 이에 대한 구제수단이 별로 없고, 미국의 명예훼손은 언론에 지나친 헌법적 특권을 부여하여 언론의 무책임과 불공평을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10년 전부터 여러 학자들과 연방 및 주의회 의원들, 단일주법위원전국회의 등이 명예훼손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나. 개혁안

개혁의 핵심은 소송시간과 비용 감축, 손해배상액 경감, 선언결정(declaratory judgement) 이나 정정, 취소제도를 명예훼손의 주된 구제수단으로 하는데 있다. 손해배상이 원칙인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현행 명예훼손의 구조는 언론과 피해자 양측에 모두 손해라는 입장에서, 이의 개혁방안은 언론측엔 복잡한 소송에 휘말리는 것과 과도한 배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피해자측엔 쉽게 선언결정이나 정정과 같은 방법으로 명예 회복의 길을 터주는데 초점이 있다. 특히 공무원 등에게는 '현실적 악의'의 입증책임을 넘지 못해 배상이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문제의 기사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주는데 있다.

개혁안 중에서 대표적인 세 가지 안은 연방의회 하원의원 Charles E. Schumer가 제기한 법안, 주의회별로 진행 중인 명예훼손법 개정안, 그리고 단일주법위원회전국회의의 정정 및 해명에 관한 단일 명예훼손법안이다.

개혁안의 핵심은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선언결정'을 원칙으로 하고, 손해배상을 금지시키는 것, 금전배상을 청구하기 전에 조정을 먼저 거치게 하고 기사가 허위라는 법원의 결정을 언론에 게재하게 하는 것, 정정과 해명을 통해서 손해배상을 해결하고 손해배상을 오직 증명이 가능한 경제적 손실에 국한하고 있으며, 정정과 해명절차를 먼저 거치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안은 금전배상이 축소되기 때문에 명예훼손변호사나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언론사도 정정제도 등에 반대하여 현재까지 논의만 무성한 채 답보상태에 있다.

다. 명예훼손방지의 다른 대안들

(1) 공적 참여금지전략소송 대응책

SLAPP(strategic lawsuits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소송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한 주민들이나 단체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여, 반대의견을 봉쇄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이런 소송의 90%는 원고 패소로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SLAPP 원고들은 반대의견 탄압 수단으로 명예훼손소송이라는 사법시스템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런 소송을 제재하려 하고 있다. 제재방안은 소송 원고측에 대한 '현실적 악의'의 입증책임 부담, 제소 제한, 벌금 부과 등의 방법이 있다.

(2) 언론사의 대응소송

미국 명예훼손 소송의 최근의 큰 특징은 언론사의 대응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언론은 단순히 언론을 괴롭힐 목적으로 사소한 트집을 잡아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는 건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은 다국적 기업을 비난한 독자편지를 게재한 건으로 그 신문사는 8건의 소송을 당했는데, 의견이라는 이유로 결국 언론사가 모두 승소했지만, 이 사건은 명예훼손소송이 남용되는 전형적 기록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미국 언론은 이제 오직 괴롭힐 목적으로 제기하는 '쓸데없는' 명예훼손에 대하여 반격을 가했다. 그 방법은 Rule 11 of the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를 이용하거나 42. U.S.C. ∬ 1983 조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전자는 민사절차를 불합리하게 복잡하게 하거나 지연시킨 경우에 상대방 변호사 보수 전액을 변상하게 하는 제도이고, 후자는 공무원이 쓸모 없는 소송으로 언론을 괴롭혔을 때 언론의 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하여 그 공무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소송남용을 방지하는데 언론의 이러한 반격이 심리적 효과를 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언론사들은 "aggressive-offensive is the best defense"라고 말하고 있다.

 

III. 우리 나라 명예훼손의 법리와 미국 법리의 적용가능성


1. 면책사유와 관련하여

미국의 명예훼손소송에서 언론이 면책될 수 있는 경우는 첫째, 그 사실이 진실인 경우, 둘째, 공직자와 공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측이 '현실적 악의'를 증명하지 못할 때, 셋째, 공평한 논평의 면책특권에 의하는 경우다.

우리 나라는 진실인 경우에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형법 제307조 제1항, 제2항).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보도에 해당될 때"만 언론이 면책될 수 있다. 이러한 입증책임은 피고에게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는 미국보다 명예훼손을 형사문제화하는 것이 쉽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에도 미국처럼 공직자 등의 경우에는 '현실적 악의' 요건을 요구하지 않아 공직자 등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이 쉬운 편이다. 또한 언론이 면책받기 위하여 '진실한 사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라는 입증을 스스로 하여야만 되기 때문에 언론사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도 면책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사안의 공익성'과 더불어 '진실이라고 믿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가 판단의 쟁점이 된다. 후자의 판단자료로서 대법원은, 자료의 확실성, 기사 성격(일간지, 월간지 여부, 신속, 기획기사여부), 정보원의 신뢰성, 진실확인의 용이성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고 있다. 공익성에 관해서도 대법원은 국가 또는 사회전체의 이익일 필요가 없고, 노동조합 등 소수집단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공익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기준은 미국의 '현실적 악의'를 판단하는 요건과 흡사하다. 따라서 우리도 대법원이 면책사유의 요건인 '공익성'과 '진실성의 상당한 이유'를 폭넓게 인정한다면, 입증책임이 형식적으로 피고에게 주어진다 해도 사실상 미국의 '현실적 악의'요건을 원고에게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공직자, 공인, 사적인 인물의 구분에 관하여


우리는 미국처럼 명시적으로 공직자, 공인, 사인을 구분하여 명예훼손 요건을 달리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처럼 소송에서 신분구분이 쟁점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이 신분 차이를 '공공의 이익'과의 관련성에서 고려하여, 공직자나 유명인 관련 내용은 비록 사생활이라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다.

대법원은 1996. 6. 28. 선고 96도977판결에서 "공직에 입후보한 후보자의 유죄확정판결의 전과사실은 종전의 공직 수행과정에서의 범죄나 비리와 직접 관련되지 않아도, 그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판 내지 평가의 자료가 되어 공직 후보자로서의 자질과 적합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며, 공적 이익에 관한 사실"이라고 하여 피고를 면책했다.

또 공인의 사생활 공표에 관하여, 대법원 1996. 4. 12. 선고 94도3309 판결은 "개인의 사적 신상에 관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관계하는 사회적 활동의 성질이나 이를 통하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 등의 여하에 따라서는 그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판 내지 평가의 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이므로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이라도 공익에 관한 것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반인의 사생활보도는 좀처럼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대법원이 공직자, 공인과 관련된 사항(공적활동과 공직 적합성 관련 사생활)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국민의 알 권리의 적용대상으로 '공익성'을 인정한다면, 미국과 같은 신분의 구분에 따른 명예훼손 요건의 차이가 한국에도 인정되는 결과가 된다.

3. 사실과 의견의 구분에 관하여

우리 나라도 사실에 비해 의견을 강하게 보호하고, 의견이라도 전제사실이 중요부분에 있어 진실하지 않거나 진실임을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을 때는 면책하지 않으며, 공평한 논평의 경우 면책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 의견에 대한 취급과 거의 비슷하다.

4. 손해배상

미국과 우리의 명예훼손에서 가장 큰 차이는 명예훼손의 종류와 액수이다. 미국은 추정적 손해, 보상적 손해, 징벌적 손해를 인정하나, 우리는 보상적 손해만 인정한다. 보상적 손해에는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위자료)가 있는데, 재산상 손해는 손해액수의 산정과 상당인과관계의 입증이 곤란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 위자료만을 청구한다. 따라서 우리 나라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위자료가 손해배상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나라 법원이 선고한 위자료 액수는 1,000만원이 대부분이어서 무책임한 언론에 대한 실질적 제재수단으로 너무 미흡하다. 윤정희 대 클라쎄사건에서 1억원, 파스퇴르유업 대 한국소비자보호원 사건에서 7천만원을 선고한 사건들이 고액 위자료 선고사건들인데, 미국의 평균위자료 150만∼200만달러와 비교하면 매우 적다. 위자료가 많아 문제인 미국과 달리 우리는 위자료가 너무 적어 형평과 정의에 맞지 않은 것이 문제여서, 위자료액을 높여야 한다.

우리도 현행법상 위자료를 산정할 때 징벌적 의미를 충분히 가미하여 고액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법원이 기존 '관례'라는 틀을 벗어나 위자료 산정에서 구체적 형평과 가해자의 응징, 피해자의 피해회복이라는 법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융통성에 있다.

5. 구제수단의 다양성


우리 나라는 명예훼손 구제수단이 미국보다 다양하고, 금전배상을 제외한 나머지 구제수단은 피해자에게 유리하다. 사죄광고는 위헌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원상회복처분으로서 ①가해자의 비용으로 그가 패소한 민사손해배상판결의 신문, 잡지에의 게재, ②형사명예훼손죄의 유죄판결의 신문, 잡지에의 게재, ③명예훼손기사의 취소광고 게재가 가능하다. 반론보도청구도 피해자에게 쉽게 열려있는 방안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합헌으로 선고하였다.

미국은 사전금지를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인정하고 사후구제를 원칙으로 하지만, 우리 나라는 가처분의 방식에 의한 사전금지가 종종 허용되었는데, 점점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또 우리는 미국만큼 언론을 괴롭힐 목적의 소송이나, 정치적 반대의견을 탄압할 수단으로 명예훼손소송을 남용하는 소송은 많지 않다. 소송기간도 미국에 비해 짧은 편이고, 비용도 미국과 달리 법원이 패소자에게 부담시키는 판결을 하기 때문에(변호사 비용은 일부만 부담시키지만) 언론이 이런 소송비용을 상환 받기 위해 대응소송까지 나갈 필요가 있을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우리 나라는 피해자에게 다양한 언론피해 구제 수단이 열려있는 대신, 배상액은 너무 적기 때문에 언론사는 패소시 미국 언론사들만큼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IV. 결 론

미국 명예훼손 법리가 우리 나라에 적용가능한지 여부는, 먼저 전제조건이 다르지만 현행 법리는 이미 상당히 접근되어 가고 있는 경향이 있고, 운영에 따라서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법리상은 문제가 없이 가능하다. 문제는 미국과 우리 나라의 서로 다른 언론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를 보면, 우리는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반론권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언론입장에서는 이 점이 편집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미국은 언론사가 피고가 된 명예훼손 또는 사생활 침해 등의 사건에서 언론사에 불리한 판결이 나더라도 이를 철저하게 보도한다. 그래서 미국민의 입장에서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더라도 이를 알릴 수 있는 회로가 열려 있고, 또 큰 손해배상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언론사에 불리한 판결에 대해서 덮어둘 때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론권 조차 보장이 되지 않을 때 피해자는 자신의 입장을 전달할 회로가 막히고, 이는 국민입장에서도 알아야 할 정당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피해자가 승소했다 하더라도 우리 법원의 손해배상액수는 너무 적어 언론에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없고, 피해자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명예훼손을 형사문제화 하게 되고, 반론보도와 사전금지 절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언론의 잘못된 관행이 고쳐지는 전제하에, 미국과 같은 언론의 자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시급한 것은 우리 법원이 명예훼손 위자료를 현실화하고, 악의적 언론에 대해서는 징벌적 배상을 인정하여 응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직자, 공인 등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관심사항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요건을 어렵게 하고, 언론을 괴롭힐 목적으로 명예훼손을 남발하는 원고를 응징하는 조치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