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헌법상 언론자유의 보장은 개인의 인격권보장과 언제나 충돌한다. 특히 수사나 재판절차에 관한 범죄보도는 법 집행을 감시·비판하는 등 다양한 정보의 이익을 충족시키지만 보도대상이 된 혐의자나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상충하는 이 두 가지 헌법적 가치의 조정은 범죄보도의 이익과 침해되는 명예의 이익을 비례적으로 형량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명예훼손법(법규정과 법원의 해석)은 전반적으로 언론자유의 가치보다는 외적 명예의 보호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어 헌법적 관점에서 보아 비례적 형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그 배경에는 그 동안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하여 구축되어 있는 중앙집권적이고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우리의 언론사들이 정치권력과 정부통제라고 하는 본래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면서 시민과의 관계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여 온 사정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도 언론환경과 정치환경이 점차 변화를 겪고 있는 사정을 감안할 때, 외적 명예의 보호에 치우친 현행의 명예훼손법은 헌법적인 관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명예훼손의 영역에 보태지는 모든 것은 자유로운 토론의 영역에서 빼앗아 온 것이다"라는 미국 Edgerton 판사의 언명은 명예훼손법을 고찰함에 있어 언제나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언론의 피의사실을 포함한 범죄보도에 대해 대법원을 위시한 법원이 명예훼손책임을 더욱 엄격하게 묻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하에서는 먼저 일반적인 명예훼손의 법리를 면책사유 내지 위법성조각사유를 중심으로 분석·비판하고(II), 이어서 범죄보도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례를 분석(III)하기로 한다. 프라이버시책임과 명예훼손책임은 원칙적으로 전혀 별개의 것으로서 프라이버시책임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II. 일반적인 명예훼손법의 분석과 비판

1. 이익형량의 접근방법

명예보호와 언론자유라는 두 가지 헌법적 가치가 상호 충돌할 때 양 가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헌법적 가치의 서열에 있어서 양자는 동등한 위치를 가지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있는가?

먼저 두 번째 질문에 관해 살피면, 명예를 포함한 인격권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존엄의 핵심내용이고 반면 언론자유도 자유민주사회의 생명선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도 '강원일보 김정일편지보도사건'에서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인 명예는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두 권리의 우열은 쉽사리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도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이처럼 대등한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두 가치가 모두 조화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사안의 특성과 개별 사건의 특별한 사정을 감안하여 어느 쪽의 이익이 양보하여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이 같은 이익형량의 결과 언론자유의 이익이 보다 우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문제의 표현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적법한 행위가 되고 반대로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자는 그 침해를 수인하여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 이익형량 판단에 있어서 표현행위로 인한 정보의 이익이 침해되는 명예이익보다 어느 정도 중하여야만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가? 이 점과 관련해서 대법원은 후보자비방죄의 위법성조각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251조 단서 소정의 위법성조각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표현행위로 얻어지는 공공의 이익이 침해되는 인격권보다 "현저히 중한 경우"라야 한다는 원심판시를 깨면서, "이익교량은 일반적으로 우월한 가치가 다른 쪽보다 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현저히 중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표현의 자유권 또한 피해자의 명예에 못지 아니할 정도로 보호되어야 할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후자가 전자보다 중하기만 하면 위법성조각사유로서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의 판시는 정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이익형량의 방법에 관한 문제이다. 표현행위의 위법성조각을 판단하기 위한 이익형량에는 "상황에 따른 이익형량"(ad hoc balancing; situationsbezogene Interessenabwägung)과 "유형적 이익형량"(definitional balancing)의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상황에 따른 이익형량은 구체적인 사건의 상황에 비추어 충돌하는 양 법익간에 우열을 가리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침해되는 법익의 크기와 정도, 표현행위의 동기와 목적, 표현기법, 정보의 이익 등 개별적 사건에 관계되는 총체적인 형량이 요구될 것이다. 이에 대해 유형적 이익형량은 미연방대법원이 접근하는 방식과 같이 명예의 피해자가 공적 인물(public figure)인지 아니면 사적 인물인지 또는 명예훼손적 사실이 공적 관심사항에 관한 것인지 사적 사항에 관한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명확한 면책기준 내지 위법성조각기준을 설정한다거나 또는 독일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인격영역론"에서와 같이 침해되는 인격적 이익의 여러 국면을 내밀영역, 비밀영역, 사사적 영역, 사회적 영역, 공개적 영역 등으로 단계화하여 그에 대한 침해가 이루어진 경우 그 법적 효과를 차별화하는 시도 등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상황에 따른 이익형량"의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익형량의 방법은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는 유리하지만, 어떤 경우에 표현행위가 적법 또는 위법한 것으로 판단될 것인지에 관하여 예견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이것은 법적 안정성의 확보라고 하는 법치국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염려도 있다. 그런데 이 점과 관련해서 최근 헌법재판소는 '강원일보 김정일편지보도사건'에서 "유형적 이익형량"의 접근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즉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법성조각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상반되는 두 권리를 유형적으로 형량한 비례관계를 따져 언론의 자유에 대한 한계설정을 할 필요가 있[고], 공적 인물과 사인, 공적인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설시하면서, 공적 인물의 공적 활동에 관한 명예훼손적 표현이 문제된 경우에는 형법상 명예훼손죄규정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도 상황에 따른 이익형량의 접근방식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 명예훼손의 일반적 면책사유에 대한 분석과 비판

형법 제310조는 명예훼손적 표현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대해 대법원은 그 동안 언론자유의 보장과 명예이익의 보호 사이의 조화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이를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대법원은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공1988, 1392)에서 "형사상이나 민사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그것이 ①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②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③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있으면 위 행위에 위법성이 없으며 또한 그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번호는 필자 붙임)고 판시한 이래 지금까지 일관되게 위 3가지 요건을 위법성조각요건으로 제시하고 있고, 이는 민사명예훼손과 형사명예훼손에서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위 위법성조각사유의 입증책임을 표현행위자에게 지우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법규정과 대법원의 해석은 헌법상의 법익형량의 관점에서 볼 때 외적 명예의 보호에 지나치게 치우쳐 표현의 자유가 지닌 정보의 이익을 경시한 것으로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명예훼손적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적시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한하여 위법성을 조각하는 것은 진실을 말할 자유를 크게 제약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인 "명예"란 사람의 인격적 가치와 그의 도덕적·사회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서의 외적 명예"를 의미한다고 봄이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다. 그런데 사회적 평가란 실제와는 다르게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될 수 있는 것인데, 통설·판례와 같이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을 '사회적 평가로서의 외적 명예'라고 이해할 때, 형법은 표현행위의 시점에 주어져 있던 사회적 평가가 설령 과대평가되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를 보호하고 고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만큼 진실을 말할 자유는 제약을 받게 된다.

오히려 개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법적 보호는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만큼의 사회적 평가에 대해서만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진실을 통하여 그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평가가 재조정될 수 있어야만 한다. 만약 진실을 말한 것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죄나 불법행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한다면, 진실을 말할 자유는 극도로 위축되는 반면 왜곡된 사회적 평가만 보호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진실을 말할 자유 내지 진실한 보도의 자유의 이익과 사회적 평가의 재조정이라는 불이익을 헌법적으로 비교형량할 때 전자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공표한 것만으로 그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고, 그러한 공익은 사회적 평가의 저하 내지 정당한 재조정이라는 불이익을 상쇄시킨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실적시에 대하여 국가형벌권을 발동하여 처벌하거나 명예훼손의 불법행위책임을 지우는 것은 외적 명예의 보호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것으로서 상충하는 기본권적 이익을 정당하게 조정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둘째, 사실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 학설과 대법원의 경향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공적 사항이든 사적 사항이든 불문하고 사실적시행위가 표현자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그러한 공익이 피해자 개인의 명예이익보다 우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적 사항에 관한 진실한 사실의 적시행위 그 자체가 공익을 구성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익만으로도 위법성조각을 인정하기에 충분할 것임에도 또 다시 "구체적 공익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법원의 해석도 구체적 공익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 입장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의 판단은 당해 적시 사실의 구체적 내용,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의 광협,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타인의 명예의 침해의 정도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의 공공성"판단에 있어서는 적시된 사실 자체가 공적인 관심사항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 사항에 해당하는지의 여부가 핵심문제이고 따라서 문제의 명예훼손적 사실적시가 공적인 관심사항에 해당한다면 그것으로 합헌적인 법익형량이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비판의 자유를 그 본질로서 내포하고 있고 여론의 형성을 통하여 자기통치(self-government)를 촉진시킨다. 그렇다면 여론형성의 기초가 되는 공적인 관심사항에 대한 진실된 사실의 적시는 그 자체 헌법 제21조가 보호하는 핵심영역에 속하는 행위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위 학설이나 대법원과 같이 구체적 공익성을 이중으로 요구하고 그 판단을 위하여 제반사정을 참작한다면, 결코 합헌적인 이익형량이라고 보기 어렵다. 법원은 어떤 사실이 공적 관심사항이고 순수한 사적 사항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확립하는데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판례와 학설은 형법 제310조의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의 요건에 주관적인 목적의 공익성이 포함된다고 당연히 해석하고 있다. 즉 위법성이 조각되기 위해서는 사실적시의 동기가 사익을 위하는 데에 있지 않고 오로지 공익을 위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과 학설은 이 목적의 공익성에 대하여 완화된 해석을 하고 있다. 즉 법문에는 "오로지"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주요한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족하고 다소 사익 내지는 비방의 목적이 함께 숨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방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방목적이 강한 경우에는 공익목적이 조금 있더라도 목적의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된 사실의 적시가 공적 사항에 관한 것이고 여론형성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까지 비방목적의 존재 여부를 별도로 따져서 위법성조각을 결정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의 자유의 핵심영역까지도 보호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여론형성의 기초가 되는 공적인 관심사항에 대한 진실된 사실의 적시를 통해 올바른 여론형성을 촉진시킨다는 공익은 개인의 특정 시점의 외적 명예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위법성조각사유로서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하겠다.

설령 사익 또는 악의(ill-will)에 의한 목적과 동기에서 이루어진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라 하더라도 공적 관심사항에 관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여 올바른 여론형성을 촉진시키는 것이라면 그 자체의 공익성을 헌법적으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의 행위가 하나의 동기만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란 드물고 또 인간 내심의 동기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그만큼 법적용자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크고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이 높다. 그리고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추상적 위험범이라는 점, 또 개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법적 보호는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만큼의 사회적 평가에 대해서만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고 진실을 통하여 그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평가가 재조정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목적의 공익성"까지 위법성조각사유로 요구하는 것은 언론자유의 가치를 도외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넷째, 대법원은 형사 및 민사명예훼손소송에서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을 표현행위자에게 지우고 있다. 더구나 피해자가 공적 인물이라 하더라도 입증책임이 표현행위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영역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이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고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리 및 in dubio pro reo의 원칙(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설령 명문의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헌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공공의 관심사항에 관한 것으로서 여론형성의 촉진에 기여하는 사실의 적시, 특히 공무원이나 공직 후보자 등의 공적 인물에 관한 사실의 적시는 헌법 제21조의 핵심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명예훼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검사 또는 피해자측이 위법성조각사유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과 다른 틀린 표현은 자유토론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고 따라서 언론자유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실과 다른 틀린 표현도 헌법상 보호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대법원의 해석과 같이 진실입증의 책임을 표현행위자가 진다는 것은 명예훼손적 표현은 언제나 허위로 추정된다는 것인바, 이처럼 공적 문제에 관한 토론을 촉진시키는 표현이 언제나 허위의 추정을 받게 된다면 민주사회에서 자유토론은 질식되고 말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절대적 확실이란 흔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최소한 명예훼손적 표현의 대상이 공적 인물의 공적 활동과 관련된 것일 경우에는 위법성조각사유가 없음을 검사 또는 피해자측이 입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컨대,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명예훼손의 위법성조각에 관한 현행의 법규정과 대법원의 해석론은 외적 명예의 보호에 치우친 것으로서 언론자유와 명예보호의 상충하는 헌법적 가치를 실천적으로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서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III. 범죄보도의 자유와 명예보호

1. 이익형량의 기본관점

범죄에 대한 수사나 재판을 보도하는 것은 그 자체 보도대상이 된 혐의자나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범죄는 반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이로써 보도대상이 된 자는 그 동안 사회적으로 승인 받아 온 인격적 가치가 저하됨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현저한 지장을 받는다.

한편, 대중매체에 의한 범죄보도는 일반 국민의 정보의 이익을 충족시킨다. 즉 다양한 유형의 범죄 행태를 조명함으로써 사회 내 규범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제재가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내용으로 실현되는지를 알리고 이를 통하여 국민은 규범을 인식하고 자신의 행위를 거기에 맞추어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범죄희생자에 대한 동정과 범죄행위 재발의 공포 등 범죄의 사회문화적 여건을 밝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여론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 뿐만 아니라 범죄수사나 재판을 보도하는 것은 법집행기관의 행위를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협력을 얻을 뿐만 아니라 법집행기관이 주어진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서 행동하는지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권력형비리사건의 경우 언론매체에 의한 폭로기사는 수사의 단서가 되어 수사를 촉진시키기도 하며, 수사개시 후에도 언론에 의한 보도는 수사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범죄보도는 사회통제기능, 여론형성기능, 형사사법감시기능의 수행이라는 다양한 정보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익은 특히 범죄가 중대하고 범죄보도의 대상이 된 자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더욱 강화된다.

범죄보도가 지니는 이와 같은 정보의 이익과 침해되는 범죄보도대상자의 명예의 이익을 형량해 본다면, 일반적으로는 범죄보도의 정보의 이익이 우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적인 평화를 깨뜨리고 그로 인하여 이웃사람이나 공동체의 법익을 침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수사대상에 올랐거나 재판을 받는 자의 명예의 이익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하는 공동체에서 일반 대중의 정보의 이익이 통상의 방법에 의하여 충족되는 것을 수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그로 인해 보장되는 형사소추 및 형사재판절차의 통제는 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같은 정보이익의 우월이 언제나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피의사실이나 재판진행상황을 보도하면서 마치 유죄인 것으로 단정적으로 보도하거나, 한 건주의식 특종경쟁이나 무책임한 선정주의에 기초하여 수사기관의 발표내용에도 포함되지 않은 사실들을 추측 기사화하여 과장되게 보도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고, 이 경우에는 정보의 이익이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개인의 명예의 이익보다 우월할 수 없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발표내용이나 수사상황 또는 재판진행상황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한 것이라면, 그 때는 정보의 이익이 우월한 것으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범죄보도가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그 보도내용의 진실성까지 보도기관이 담보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이 담보되지 않은 경우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는다면, 보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국민의 정보의 이익은 크게 상실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언론기관이 범죄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틀린 내용이 보도될 수 있다. 오보에 대해 명예훼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다면, 보도기관은 추적보도나 조사보도를 회피할 것이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발표기사만을 보도하는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여 권력의 감시·비판이라는 보도의 본래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상의 기본관점에 입각해서 아래에서는 범죄보도의 위법성조각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를 분석한다.

2. 면책사유로서의 공공성과 익명보도의 원칙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언론기관의 범죄보도는 다양한 정보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으로서 그 자체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일본 형법 제230조의2는 제2항에서 "전항의 규정의 적용에 있어서는 공소제기 전의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로 본다."는 간주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피의사실이 가지는 공공성 내지 공적 이해관련성의 정도는 반드시 일률적인 것이 아니고 권력범죄와 같은 공공의 관심이 높은 것에서부터 단순한 폭행죄와 같은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실무에서 범죄보도는 모두 공공적 사항으로 간주되고 그 강약은 문제되지 않으며, 또 피의사실 중에는 피의자의 성명, 연령, 직업도 포함된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범죄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임을 단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대법원은 "사실의 공공성"의 요건을 "구체적 공익성"의 판단으로 전환시켜 표현행위에 관련된 제반 사정과 훼손되는 명예의 침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명연예인불법유학알선보도사건'에서는 신문사가 여배우의 불법유학알선혐의를 보도한 기사 자체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보도된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는 반면, 93다36622 사건에서는 장인이 사위를 고소한 사건에 관한 신문보도에 대하여 "이 사건 기사는 일반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것으로서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 행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고 있다. 결국 대법원은 중대한 범죄나 공적 인물의 범죄혐의를 보도하는 것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것으로서 공공성이 없다는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소 또는 인지에 의하여 수사의 공적 절차가 진행된 사건의 보도는 그 사건내용의 경중 여하를 떠나 그 자체 공공성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범죄보도는 수사기관의 활동을 국민에게 알린다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가치성의 판단은 언론기관의 몫이다. 공적 절차의 대상이 된 사건이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언론윤리로서 거론되는 소위 '익명보도의 원칙'을 판례법에서 정식으로 수용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어 주목된다. 대법원(제1부)은 '이혼소송주부 청부폭력오보사건'에서 대중매체의 범죄보도는 원칙적으로 공공성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범죄 자체를 보도하기 위하여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범인이나 범죄혐의자에 관한 보도가 반드시 범죄 자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고 판시하면서, 공적 인물이 아닌 사인의 범죄혐의에 대해 보도하면서 실명과 초상을 사용한 것은 그 자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나아가 언론사의 보도내용의 진실성 내지 진실믿음의 상당성의 존재여부를 살필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명예훼손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기묘한 것은, 실명보도한 언론사의 경우와는 달리 피의사실을 공표한 수사기관(대한민국)의 명예훼손책임을 판단하는 부분에서는 공표사실의 공공성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뒤에서 살피는 이른바 진실믿음의 상당성이 없다고 하면서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아무튼 대법원의 위 판시에 따르면, 언론사가 사적 인물에 대한 범죄보도를 하면서 실명을 적시한 경우에는 그 자체만으로 곧 명예훼손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단히 놀라운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보도내용 자체의 공공성 여부를 구체적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종래의 접근방법을 뛰어 넘어, 실명보도의 경우 공적 인물인지 사적 인물인지의 여하에 따라 범죄보도의 공공성을 결정짓는 접근방법은 소위 유형적 이익형량의 방법을 채택한 것으로서 일응 진일보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제 내용은 범죄보도가 지니는 정보의 이익을 완전히 도외시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적 인물이라 하더라도 범죄의 중대성이나 시사적 성격에 따라 실명보도의 공익이 현저한 경우가 있음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특히 익명보도의 법적 강요는 언론사가 확보한 진실을 보도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보도내용의 신뢰성을 현저히 떨어뜨려 사회의 公器인 언론사를 무책임한 방종상태로 내 몰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익명보도에 의해 아무런 법적 책임의 부담이 없는 언론사는 정보조작의 자유를 획득한 셈이 될 것이고, 조작된 익명보도는 국민에게 아무런 정보의 이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최근 익명보도의 원칙이 일본과 독일,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여러 논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어느 법률가의 글에서는 익명보도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동 원칙이 "미국, 스웨덴 등지에서는 일반화되어 있으며, 일본에서도 1980년대부터 본격논의가 되어 이미 상당한 정도 진척되어 있다."고 외국의 사정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의 보도윤리기준과 법적 기준은 구별되어야 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미국·스웨덴·일본에서의 익명보도의 원칙은 명예훼손소송의 법적 기준이 아니라 언론사의 보도윤리기준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독일에서는 1973. 6. 5. 연방헌법재판소가 선고한 Lebach 판결에서 가석방을 앞둔 수형자의 익명의 이익과 사회복귀의 권리를 인정한 이후 범죄보도에 있어서 익명보도의 중요성과 그 기준에 관해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위 Lebach 사건은 가석방을 앞둔 수형자의 범죄행위, 동성애를 포함한 범인들 상호간의 관계, 수사의 경위, 범행의 배경 등을 초상과 실명을 사용하여 다큐멘타리 드라마 형식으로 조명한 방송프로그램에 대하여 수형자의 초상권과 성명권을 근거로 방영금지가처분을 인정한 것으로서, 결코 명예훼손소송에서 익명보도의 원칙을 채택한 것이 아니며 또 이 판결에서 인정한 익명의 이익은 범죄의 발생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복귀를 앞둔 범죄자의 '홀로 있을 권리'가 범죄보도의 이익보다 더 중요해지게 된다는 판단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아무튼 위 대법원의 판시에 의하면, 이제 사적 인물의 실명보도는 설령 그것이 진실이고 공정하게 보도된 것이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공적 인물인지 사적 인물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있어 법의 예측가능성은 상실되어 버린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태가 언론사의 범죄보도를 크게 위축시킬 것임은 명백하다.

그런데 위 판결 이후 선고된 '회사기밀누설보도사건'에서, 대법원(제3부)은 회사기밀누설혐의로 구속된 사기업체 차장이 공적 인물인지의 여부를 전혀 판단하지 않은 채 보도내용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는 전제하에 진실믿음의 상당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다만, 이 판결에서는 익명보도의 원칙이 진실믿음의 상당성 판단에 있어서의 한 요소로 들어가 있을 뿐이다. 범죄보도의 경우는 아니지만, 이전의 대법원(제2부) 판례도 행정상의 실명공표가 문제된 사건에서 실명공표는 진실믿음의 상당성 판단의 한 요소로서 진실확인의무를 가중시키는 요소였다.

그렇다면 현재 익명보도의 원칙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가 상호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전자는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98. 11. 4. 선고된 서울지방법원 97가합37581 판결은 전자의 판례입장에 따라 "공적인 인물이 아닌 만큼 … 범죄혐의자의 신원까지 명시한 것은 공공성을 지닌 보도라고 할 수 없고 원고를 '용의자' 등으로 표현했다고 하여 달리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 입장에 따른다면 사인에 관한 실명보도의 경우에는 진실성 여부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겠으나, 이 입장에서도 공인의 경우에는 여전히 진실성이 면책사유로서 문제되기 때문에 이하에서는 나아가 이를 검토한다.

3. 면책사유로서의 진실성과 진실믿음의 상당성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명예훼손의 일반적 면책사유로서 사실의 공공성과 목적의 공익성 외에 진실성이 요구되고, 다만 진실성의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처럼 진실성 요건을 "진실믿음의 상당성" 판단으로 대체한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대법원은 명예훼손적 표현이 세부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어도 전체로 보아 진실과 합치되면 족하다는 것이고, 학설도 적시된 사실의 중요부분이 진실과 합치되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범죄보도의 명예훼손소송에 있어서 위법성조각의 인정여부는 대체로 "진실믿음의 상당성"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언론사는 범죄보도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진실책임을 져야 하는가? 과연 언론사는 보도한 범죄혐의나 재판 중의 범죄사실 자체에 대해 진실을 추구할 책임이 있는가? 언론사의 진실책임은 누가 범죄혐의를 받고 있고 누가 체포되었으며 어떤 내용의 재판을 받고 있는지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면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수사나 재판기관도 아닌 언론사에게 보도하는 범죄사실 자체의 진실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수사상황이나 재판상황을 전달하는 형식의 범죄보도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그 보도내용이 '공정하고' '정확한' 것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판단요소이고, 이 요건이 충족되는 것만으로 명예훼손의 책임에서 면제되어야 할 것이다. 따로이 범죄사실 자체에 대한 진실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과 다수의 학설은 보도된 피의사실 자체의 진실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수사기록 및 담담 검사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근거하여 범죄보도를 한 경우에도 언론사가 진실확인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는지의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진실믿음의 상당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즉 "보도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가의 여부는 기사의 성격, 정보원의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하였는가, 그 진실성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가 하는 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한다."(밑줄 필자 붙임)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상황을 전달하는 언론사에 대해 피의사실에 대한 진실확인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진실확인의무가 요구될 수 있다면 또 다른 형식의 범죄보도, 즉 언론사 자체의 추적보도나 조사보도를 통해 범죄혐의를 보도하는 경우일 것이다.

아무튼 대법원은 일률적으로 보도된 범죄사실 자체의 진실증명을 요구하고 있고, 진실증명이 없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되, 이 판단의 기준은 '언론사가 얼마나 진실확인의무 내지 조사의무를 이행했는지의 여부'이다. 결국 현행의 명예훼손법에 있어서 범죄보도의 위법성조각은 많은 경우 '진실확인의무의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의 진실확인의무가 요구되는지에 관해 대법원 판례는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예측가능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즉 대법원은 정보원의 신빙성, 피해의 정도, 사실확인의 용이성, 기사성격상 보도의 신속성요청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진실확인의무의 이행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다만, 정보원의 신빙성 내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기초한 것인지를 제1 요소로 삼고, 그 신빙성이 강한 만큼 진실확인의무는 약화되고 신빙성이 약한 만큼 진실확인의무는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보도의 신속성이 덜 요구되는 잡지나 논픽션 드라마방송의 경우에는 신문보다 높은 진실확인의무가 요구되며, 실명공표인 경우에는 진실확인의무가 더 높게 요구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기준만으로는 예측가능성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법원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범죄보도를 한 언론사가 어떤 경우에 명예훼손책임을 지는지의 명확한 기준이 없어 범죄보도를 위축시킬 위험성이 높다고 하겠다. 특히 대법원은 진실확인의무를 요구함에 있어 보도내용이 공적 인물에 관한 것이어서 공공의 관심사가 높은 것인지의 여하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체적으로 하급심판결보다 더 높은 진실확인의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단컨대, 진실확인의무의 요구 및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의 여부에 따라 현저히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범죄보도가 수사기관의 공식적 발표나 공적 기록에 기초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진실확인의무를 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경우의 중요한 판단요소는 보도가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수사기관의 공식적 발표라면 경찰이든 검찰이든 정보원의 신뢰도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이 경우 범죄혐의가 아닌 유죄로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를 남용한 것으로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적 인물인 경우 주요 사실이 정확하게 보도되었다면 사소한 허위를 이유로 명예훼손책임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공공의 정보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IV. 맺는 말


명예훼손을 넓게 인정한다는 것은 그 만큼 민주정치의 초석인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공공의 관심사항에 대한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진다. 우리의 명예훼손법은 개인의 명예보호에 치우쳐 있고 그 만큼 언론자유의 가치가 도외시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면책사유를 적용하는 법원의 태도는 지나치게 상황구속적이어서 법질서가 제공해야 될 예측가능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법원의 해석이 명예보호에 치우친 것은 어쩌면 우리의 언론기관들이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기관들이 민주사회의 公器로서 제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현재의 명예훼손법도 변화될 것이고 또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