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원단상] 독불장군의 쓴 웃음
독불장군의 쓴 웃음

권 일
서울제2중재부
前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근 검찰과 법원의 ‘선재성 판사 사건’의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로 입맛이 씁쓸했다. 언론이 앞장 선 여론이나 사법부의 결정이 내 생각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여론이나 사회 정의와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판단력이 떨어져 혹시 독불장군이나 사회불만세력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잠시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 판사는 광주지법 파산부 재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법정관리하던 기업에 고교 동창인 변호사를 추천하고 그 변호사로부터 얻은 기업의 정보를 이용해 부인 명의로 2억원을 투자해 시세차익을 남긴 혐의로 기소됐다. 적용 죄명은 변호사법 위반과 뇌물수수였다. 그러나 1심인 광주지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하면서 ‘광주고법의 재판은 믿을 수 없다’며 관할이전신청을 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사건을 서울고법에서 맡도록 결정한 것이 사건의 개요다.
이 사건은 현직 간부 법관이 연루된 터라 이목이 집중됐지만 수사 초기부터 말썽도 많았다. 선 판사가 광주 전남 지방에서만 19년간 근무해 온 이른바 향판(鄕判)이었기 때문이다. 수사가 진행되는데도 선 판사는 계속 그 지역에서 법관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11건이 잇달아 기각된 것도 이례적이었다.
예상대로 1심인 광주지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나름대로 법 이론을 구성하기는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무죄 논리는 궁색하고 상식적으로도 정당성이 떨어져보였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고 여론은 들끓었고 언론은 일제히 법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이 항소심 관할 이전 신청을 내자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언론은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재판부를 서울로 옮긴 것은 잘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검찰과 법원이 잘했다는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여론을 의식한 꼼수고 죽을 꾀를 냈다고 오히려 욕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나라 사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칭송하지만 ‘처음 있는 일’이라고 다 좋아할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런 변칙 처리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원칙이 있고 정상적인 절차와 과정이 버젓이 있는데도 초유의 비상사태처럼 처리한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부작용은 어떻게 감당할 지 의문이고 피해는 결국 힘없는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 뻔하다.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면 정상적인 과정과 절차를 밟아 바로잡아야 했다. 광주고법의 항소심과 대법원의 상고심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1심 재판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 광주고법은 사건을 자신있게 머리 들고 처리할 수 있을까. 언론이나 여론의 순간적인 질타가 두려워 대법원까지 눈썹에 붙은 불만 끄겠다고 한다면 법률을 다룰 것이 아니라 정치판에 나가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대다수 법관들의 침묵이다. 걸핏하면 ‘연판장을 돌린다’, ‘법관회의를 소집한다’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인터넷에 불만을 쏟아내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법관 인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법관들이 이번에는 왜 강 건너 불 보듯 하는지 궁금하다. 보수냐 진보냐의 다툼보다 ‘선 판사 사건’에서 나타난 검찰과 법원의 기회주의적인 눈치보기가 나에게는 훨씬 심각하고 충격적이었다. ‘선 판사 사건’의 법관 비리 부분은 개인적인 문제일지 모르지만 사건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검찰과 법원의 태도는 법조인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해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일시적으로 여론이 지지한다고 희희낙락할 일은 더욱 아니다. 여론을 의식하는 것보다는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차라리 낫고 훨씬 덜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만 언론 매체들은 ‘선 판사 사건’을 대법원이 잘 처리했다고 호들갑이고 여론도 모처럼 사법부에 호응하는 분위기이니 오늘도 나는 혼자 뒤돌아서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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