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얘기 저런얘기] 서지초가뜰 - 단아하고 소박한 한정식의 진수
서지초가뜰 - 단아하고 소박한 한정식의 진수
기획팀 구율화 팀장
꼬불꼬불 흙길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이 길로 가면 정말 식당이 나오기는 하는 걸까. 미심쩍은 마음에 택시 기사에게 물었더니 걱정말고 잠자코 기다리란다. 아마도 이 집을 찾는 승객들은 대부분 같은 질문을 했던가보다. 과연 조금 더 들어가니 양지바르고 아늑한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가집이 몇 채 보인다. 창녕 조씨의 집성촌인 ‘서지마을’이다. 예부터 마을의 모양이 마치 쥐가 차곡차곡 쌀을 모아 보관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서지초가뜰”은 “서지골의 초가집 뜰”이라는 뜻으로 창녕 조씨 종가의 고택이자 종가의 전통음식을 계승 전수하기 위해 강릉시 농업기술센터가 지정한 전통음식 1호점이기도 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한옥을 감싸 안았고 그 뒤로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앞으로는 꽤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풍수에 밝지 않은 사람이라도 넉넉하고 풍족한 좋은 터임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서지>;의 서(瑞)는 상서롭다, 길하다는 뜻이니, 마을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메뉴에는 못밥(동네 사람들이 모여 모내기 전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차려주는 상) 과 질밥(김매기가 끝난 뒤 차려주는 상), 생일상 등이 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손님상”. 전주나 담양 등 남도의 한정식처럼 한상 떡 벌어지게 나오겠거니 생각했지만 상을 대하니 수묵담채화처럼 단촐하고 소박하다. 메뉴는 미역국, 문어숙회, 각종 나물과 고추부각, 야채 튀김, 생선 구이, 명태포식혜 등등. 매일 집에서 차려먹는 건 아니지만, 마음먹으면 오늘 당장이라도 부엌에서 차려낼 수 있는 그런 음식들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튀는 음식 하나 없이 모두 골고루 간이 딱 맞는다.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며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면서도 정성이 가미된 음식들. 손 가는 음식 한두 가지를 중심으로 다른 반찬들이 뒷받침 하는 여느 한정식 집과 비교해, 몇 되지는 않으나 음식 하나하나가 밥상의 주인인 느낌이다.
좋은 음식에 좋은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300년 동안 내려온 전통 비법으로 빚어진 송죽두견주(松竹杜鵑酒)는 말 그대로 솔잎, 솔방울, 대나무잎, 진달래꽃 등으로 술을 내린 것이다. 은근하고 시원한 향이 먼저 코를 자극하고, 달콤쌉싸름하게 목으로 넘어가며 끝맛은 개운하다. 다만 막걸리보다 도수가 세다고 하니 맛있다고 홀짝홀짝 먹다가는 뒷일을 감당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든 분을 꼭 한번 뵙고 싶었으나, 창녕 조씨 9대 종부이신 주인장은 “종가 명가 음식전시회”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우셨다. 서지초가뜰은 “사위 첫 생일상”을 출품했다고 한다. 과연 이 댁의 음식은 이름 그대로 처음 맞이하는 사위의 생일상에 어울리는 정성과 낭만이 느껴진다. 아마도 시끌벅적하면서도 쓸쓸한 도시의 일상에 유난히 지치는 날이면 서지초가뜰의 음식이 생각날 것 같다. 그건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상하면서도 너그러운 우리 어머니의 맛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