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일환의 음악의 발견]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제1번「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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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제1번「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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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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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촉발된 서울시향의 음악감독 정명훈의 보수에 대한 논란은 삭감안을 받아들인 재계약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정명훈이 서울시향에 부임하면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공연을 찾을 때마다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향은 마치 스폰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흡수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명훈이었기에 가능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고려해보자.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만남은 양측의 필요에 의해서 맞아떨어진 감이 있다. 서울시향에서 아무리 많은 예산을 마련했다한들 세계 정상급의 지휘자를 모시기는 쉽지 않다. 대우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화려하게 이어나가고 싶은 지휘자라면 클래식계 변방에 놓인 서울에 오기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지휘자이지만 바스티유를 사임한 이후, 주요 오케스트라들의 하마평에 오른 적은 있지만 특별한 주목을 받진 못했다. 이건 그의 실력이 문제라기보다는 세계음악계 내에서 그의 음악적 성격과 위상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그와 동갑인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의 화려한 행보나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처럼 요즘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들을 생각하면 정명훈에게도 안정적인 포스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서울시향과의 만남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가 지휘하는 공연은 금세 매진되고 음악팬들로부터 전적인 신뢰도 받고 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정명훈의 보수가 아니다. 정명훈이 일류인가 삼류인가를 따지는 어이없고 유치한 질문은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명훈에 의한 서울시향이 지금 어떻게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서울시향의 비전을 좀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저 연주력이 좋아졌고, 유럽투어도 하고, 유명 연주자들이 협연자로 나서고, DG에서 음반 나오고, 그 음반이 좋은 평가를 받으니 잘 되고 있다, 이제 5년, 10년이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은 최근에 발매된 서울시향의 말러 음반을 들으면서 어떤 가능성과 회의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기 전에 내지에 있는 사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홀에 선 서울시향의 사진을 보고서는 좀 실망스러웠다. 이 음반은 예술의 전당에서의 공연실황인데, 왜 유럽 투어 중에 섰던 콘서트헤보우 홀의 사진이 실렸을까? 생각해보면 어떤 맥락인지 짐작은 되지만, 그것이 보여주기 위해 과장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진 한 장을 보았을 뿐인데 우리에게 지금 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필요한가, 혹은 서울시향은 어떤 오케스트라를 지향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그저 쉽고 편한 답을 들은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진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필요한가? 여기에 말러 교향곡 1번 2악장, 도무지 춤곡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우아함과 리듬감을 느낄 수 없는 랜들러(Landler)를 들으면서 ‘아아 이런 것들은 전통 없이는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닐거야. 과연 유럽의 오케스트라들처럼 체화된 전통을 가지지 않은 서울시향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3악장으로 넘어갔는데 이번엔 ‘아니야 뭔가 될지도 몰라’ 이런 기분으로 바뀌었다. 그처럼 그로테스크한 3악장은 유럽의 오케스트라에게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음반이 수많은 말러 교향곡 음반 가운데서도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명훈은 훌륭한 지휘자이고, 그와 함께 서울시향은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혼자의 힘으로 최상의 결과를 낳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적인 음반사에서 음반 나오고, 유럽투어도 했으니 이제 서울시향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울시향의 미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서울시향만의 기준과 접근방식을 모색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진짜 낭비는 보수가 아니라 정명훈이 국내에서 그저 관현악 지휘자로 썩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의 본령은 오페라에 있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