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례토크] ‘대머리’는 나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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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는 나쁜 것이 아니다

양재규
정책연구팀 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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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을 탔는데 한 중년의 남자분이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런데 이 분, ‘대머리’시다. 게다가, 콧수염까지 기르셨다. 사극에나 나올 법한 독특한 외모를 가지신 이 분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에 선고된 판결이 떠올랐다.
‘뻐꺼’나 ‘대머리’라는 표현은, 그 표현을 하게 된 경위와 의도, 피고인과 피해자는 게임 상대방으로서 닉네임으로만 접촉하였을 뿐인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여 모욕을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객관적으로 그 표현 자체가 상대방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거나 그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도9033 판결)
피고인은 온라인게임 도중 홧김에 채팅창에다 ‘뻐꺼, 대머리’라고 썼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에서는 “통상의 일반인이 ‘대머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지 않다”는 이유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피고인의 상고로 개시된 상고심 재판에서 대법원은 1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로써 ‘대머리’의 명예훼손성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사건은 사안 자체의 중요도나 사회적 파급력에 비해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이 가십거리에 가까웠으며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결론에만 주목했다. 그런데 법리적인 측면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보통 명예훼손은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정의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반사회적·반윤리적 행동이나 성향을 보인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이라 평가받는 행위나 대상은 흔히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당사자의 외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거나 인식한다고 해서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기 곤란하다.
‘대머리’는 탈모로 인해 두피에 머리카락이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 뿐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물론, ‘대머리’를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이런 사람의 시각으로 본다면 ‘대머리’라는 표현은 듣는 사람에게 굴욕감 내지 수치심을 안겨주어 나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대머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극복되어야 할 편견일 뿐이다. 그런데 법원에서 명예훼손으로 본다면 ‘대머리=나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고 극복되어야 할 편견을 더욱 고착시키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법원 역시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간파했기 때문인지 2심 법원과는 달리 ‘대머리’라는 표현을 당사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내용으로 보지 않았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머리’라고 한 것을 명예훼손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발언의 경위와 의도, 배경에 주목하여 상대방에 대한 경멸적인 감정의 표현 즉, ‘모욕’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다시 재판을 맡게 된 2심 법원이 명예훼손 대신 모욕죄로 피고인을 처벌할 것인가? 아마도 모욕죄 처벌 역시 어려울 것이다. 모욕죄 성립에서는 표현의 수위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대머리’ ‘뻐꺼’ 정도의 수위는 처벌하기에 다소 미흡하다. 좀 더 심한 표현을 사용했어야 한다. 이건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피고인은 매우 치밀하고 이성적인 사람일 것 같다.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상대방에 대해 모욕적 감정을 표출함에 있어서조차 수위 조절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대머리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사람의 생김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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