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례토크] ‘indicate’, 번역의 어려움을 시사하다
'indicate'. 번역의 어려움을 시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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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재 규 (정책연구팀 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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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8월 29일, 서울의 모처에서 한미 양국 고위 공무원들이 회동했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포머로이 미 민주당 하원의원,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였다. 이 날 그들 사이에서는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 ; 당시 우리나라는 한-미 FTA 협상안이 타결된 지 불과 두 달 후인데다 국회 비준을 앞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협상 당시 우리 측을 대표했던 김 본부장이 미국 측 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날 회동은 공적인 관심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화 내용은 물론 세 사람이 회동했다는 사실조차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지나갔다.
; ;그러나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가 보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흐른 뒤인 2011년 8월 30일, 그 ;날의 회동이 만천하에 폭로된다. 한 건의 미 정부문서가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올라온 것이다. 이 사실을 한 중앙일간지에서 ‘김 본부장이 쌀시장 개방 추가협상을 미국 측에 약속했다’고 기사화했다. 기사의 토대가 된 미 정부문서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었던 것일끼? ;원문 중 문제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 'Kim indicated that ROKG(Republic Of Korea Government) would revisit the rice issue once the 2004 WTO arrangement on rice quotas expired in 2014'
; ;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된 단어는 'indicate'다. 이에 대해 기사에서는 ‘약속했다’고 썼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종훈 본부장은 약속한 사실이 없으니 허위보도라고 주장했다. 이 논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 ; ; ;"위키리크스 문건의 내용은 … [언급하였다]고 되어 있을 뿐, … 「약속」하였다는 기재가 없고, 위 문건의 전체 문맥에 비추어 보더라도 원고가 쌀 개방의 추가협상을 「약속」하였다고 해석될 수 있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는 점 … 등에 비추어 보면, … 2014년 이후 쌀에 관하여 재 논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임에도, 이 사건 보도에서 「약속했다」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 사건 위키리크스 문건의 내용을 왜곡한 것이어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5. 16. 선고 2011가합116282 판결)
; 우리말 '약속하다'에 해당하는 영단어는 물론 promise일 것이다. 법원은 미 정부문서에 promise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점을 주목했던 것 같다. 그리고 indicate라는 단어는 '언급하다'로 번역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번역의 적절성 문제가 된다. indicate에는 ‘시사하다’를 비롯하여 다른 뜻도 많은데, 문맥상 가장 적절한 번역이 무엇인지라고 본다면 증거에 의한 존부의 판단이 가능한 문제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 ; 물론, 법원은 언론사의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허위보도지만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것이다.
; ; 괜찮은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indicate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는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여전하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 나라 통상교섭의 책임자가 외국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으며, 우리의 이익을 얼마나 대변했는지 여부다. 곡물자급률이 26.7%에 불과한 이 나라의 빈약한 식량주권과 직결되어 있을 수도 있는 발언이 오간 것이 사실이라면 설령 다소 부정확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허위보도였다고 볼 필요가 있었나 싶다. 이것은 종래 우리 법원이 취했던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경우에는 세부에 있어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위의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에도 부합한다.
; 판결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일종의 indicator다. 법원 판결이 indicator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길 바랄 뿐이다. ;